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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니콜스, <졸업>과 물의 이미지 본문
불안정한 미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랑 이야기,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라는 물음에 답하는 벤자민의 “잘 모르겠어요.”에서 드러나는 청년의 불안감. <졸업>의 지루한 주제이다. 영화에 드러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위대한 걸작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지루한 주제에 더불어 영화 속 이미지들은 <졸업>을 흥미롭고 뛰어난 작품으로 격상시킨다. 부모의 기대에 맞춰 살아오던 주인공 벤자민은 부모의 친구인 로빈슨 부인의 유혹을 받자, 거절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 탓에 혹은 본능적 욕구에 의해 엄청난 일탈을 경험한다. 그 후 그의 삶은 타자에 이끌려 다니던 ‘순응자’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자’로 변모한다. <졸업>에서 나타난 물질성, 이미지들은 뛰어나게 변모 과정을 담아낸다. 그 유명한 마지막 버스 장면은 그야말로 사회의 억압과 요구를 모두 걷어내고 오롯이 ‘주체자’로 거듭난 벤자민이 과연 ‘주체자’인지, 사실 사회의 정도에 벗어난 ‘일탈자’인지 의문을 간직한 채 찝찝하게 막을 내린다.
물의 이미지
벤자민이 졸업을 하고 집에 돌아온 첫장면이다. 오프닝에서부터 이어지던 벤자민의 공허한 표정의 클로즈업은 집에 도착한 후에도 지속된다.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 이전까지 그야말로 ‘모범생’으로 살아오던 그의 인생에 대한 회의가 표정에 가득 담겨있다. 과장된 수족관의 물기포소리는 그의 고독과 고뇌를 심화한다. 그러나 고뇌로 가득해 어둡던 화면은 아버지가 연 문에서 들어온 밝은 조명에 의해 방해받는다. 더욱이 프레임 안으로 침범한 아버지는 벤자민의 전경에 위치하여 고독을 직접적으로 방해한다. 물기포소리를 덮는 그의 큰 목소리는 결국 벤자민의 고민을 강하게 억압한다. 어른들의 혹은 사회의 억압이자 20대 초반의 고민을 어린 고민으로 치부하는 모습이다. 벤자민은 앞으로 무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아버지에게 털어 놓지만, 아버지는 일단 밑에 있는 손님들께 인사를 하러 내려오라는 반응으로 일관한다. 결정적으로 등장한 어머니는 아예 화면을 가리며 벤자민을 아래층에 있는 어른들과 만나게 하며 순응하는 벤자민의 모습이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어른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피해 방으로 피신을 온 벤자민은 수족관의 기포소리를 들으며 다시 고뇌에 빠진다. 그러나 곧이어 이번에는 로빈슨 부인이 고요와 기포 소리를 깬다. 로빈슨 부인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결국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게 된다. 여전히 주변에 끌려 다니는 벤자민. 로빈슨 부인이 던진 차키는 벤자민처럼 보이는 수족관 속 다이버 앞에 꽂힌다. 그는 아주 우습게 아무런 반항도 못 하고 수족관에 빠진 차키를 뽑는다. 물에 빠진 자신은 몰라보고 허겁지겁 타인의 차키 구출부터 하는 ‘순응자’ 벤자민이다.
21살이 된 벤자민의 생일에 부모님은 그를 위한 파티인지 아니면 부모 자신을 위한 파티인지 모르겠는 파티에서 벤자민에게 다이버 장비를 선물한다. 21살의 청년 벤자민을 지속적으로 ‘boy’라고 부르는 그의 부모의 대사에서 벤자민을 어린아이처럼 여기는 모습이 보인다. 남들 앞에 우스운 꼴을 하고 나가고 싶어하지 않지만 결국 부모의 성화에 벤자민은 다이버 장비를 착용한 채 나간다. 그의 시점숏에서 물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착용한 고글과 수영복으로 인해 시점숏에서 들리는 사운드는 벤자민의 숨소리뿐이다. 외부의, 타자의 소리들은 모두 제거되고 오롯이 내밀한 시점을 갖게 된다. 이런 이미지는 물에 빠진 벤자민의 다소 외로워 보이는 모습에서 다시 확인되고, 이 이미지는 직접적으로 수족관 속 다이버와 연결된다. 물속에 빠져 타자의 배제를 경험하는 벤자민. 이어지는 장면은 그가 로빈슨 부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는 장면이다. 허나 물에 빠져있는 쇼트에서 로빈슨 부인에게 전화를 거는 사운드가 선행한다.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지만 의도적으로 길게(약 10초) 다음 장면의 사운드가 먼저 들리며 벤자민의 심리가 부각된다. ‘순응자’에서 ‘주체자’로 변모하는 첫 번째 변곡점이다.
로빈슨 부인과의 일탈이 지속된 후에 나타나는 벤자민과 물의 이미지이다. 수영장의 물과 그 위에 자유롭게 떠 있는 벤자민의 모습이 디졸브되며 두~세 번 반복된다. 그야말로 ‘물아일체’의 상태이다. 벤자민이 주체적으로 변한 모습을 이전과는 다른 물의 이미지와 함께 보여준다. 선글라스를 끼고 물에서 홀로 표류하는 벤자민. 그의 고뇌를 방해하는 타인의 모습은 이전과는 달리 벤자민의 프레임에 개입하지 못하고, 그의 시점에서만 볼 수 있다. 게다가 그의 시점에 위치한 타자들은 강력한 태양에 의해 실루엣으로만 보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없어 보인다.
로빈슨 부인의 딸인 일레인과 만나보라는 부모의 잔소리에 물 속의 고요함으로 대피하는 벤자민. 표면적으로 부모의 잔소리에 이끌려 일레인과의 만남이 성사지만, 그의 결정은 실은 물속에서 주체적으로 실행된다. 이다음 장면은 일레인과의 만남이다. 장면의 연결은 다이버-로빈슨 전화에게로 전화 장면의 연결과 대응한다. 역시 ‘주체자’로 변모하는 두 번째 변곡점이다.
물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빼놓고 가기 섭섭한 <졸업>의 위대한 마지막 장면. 영화 내내 들리던 ‘sound of silence’ 즉, ‘고요의 소리’ 트랙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역설적 제목인 고요의 소리. 공허감을 드러내는 가사는 내밀하고 주체적이지만 동시에 모든 타자를 배제하고 원하는 것을 ‘순응자’에서 벗어나 완전한 ‘주체자’가 된 벤자민이 과연 행복한 결말인지, 그저 버스 속 관객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단순한 ‘일탈자’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 역설적으로 재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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