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비어슬리
- 존재와 시간
- 마사히로시노다
- 영화예술정리
- 다름의 사유
- 시노다마사히로
- 졸업 영화글
- 마이크 니콜스 졸업
- 상징예술
- 영화예술2장
- 영화예술요약
- 쥐스틴트리에
- 마틴하이데거
- 영화예술
- 셜록주니어
- 플라톤
- 예술
- 만개한벚나무아래에서
- anatomy of fall
- 미학
- 이정홍
- 추락의해부
- 괴인
- 드팔마
- 미학사1장
- 하이데거
- FILMART
- 버스터키튼영화
- 기획투사
- 미학사
- Today
- Total
공부기록
제 2장 유럽과 양차 세계대전 본문
1.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유럽
"유럽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랫동안 장기간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상대적인 평화를 즐겼다. 한편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상황에서 유럽 문명은 과학과 이성의 토대 위에서 영원히 진보와 번영을 누리리라는 낙관론이 세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 "기묘하게도" "우생학과 인종이론이 과학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인간은 전쟁을 통해 종을 개량하고 발전한다는 식의 전쟁 예찬이 횡행했다." "한편으로는 근대의 과학기술, 규율, 경제발전의 성과가 결합되면서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현대적 군대가 형성되었다." "또한 19세기 후반에 개발된 후장식 대포, 기관총, 라이플, 잠수함, 어뢰, 항공기를 비롯한 현대식 무기가 산업혁명을 통해 배양된 대량 생산방식과 결합하여 유럽의 주요 열강은 예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대군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당대의 유럽인들은 유럽 문명의 밑동을 뒤흔드는 대전쟁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했다." "통합된 국민국가를 구성하지 못한 채로 영국과 프랑스에 뒤처져 패권 경쟁에서 밀려나 있던 독일어 사용권 국가들이 1871년에 프로이센의 주도권 아래서 통일을 이루면서 팍스 브리타니카로 표상되는 유럽의 상대적 평화는 궁극적으로 종언을 맞이했다." "독일은 제2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서 급속한 공업화를 이루어냈고, 19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공업 생산력을 토대로 적어도 경제 면에서는 프랑스는 물론 영국까지 제칠 수 있었다." "육군 강국이었던 프로이센은 지상군에서는 인구 정체 현상 탓에 군대 충원에 어려움을 겪던 프랑스를 압도했고, 해상 병력에서도 대규모 건함 정책으로 영국의 제해권을 위협하게 되었다." 1
"이렇듯 세기의 전환기에 유럽은 빠르게 솟구치는 독일에 어떤 지위와 위상을 부여해야 하느냐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후방 열강인 독일에게 적절한 지위를 인정해주고 이해관계를 평화롭게 조정해야 할지, 아니면 전면적인 무력 충돌을 불사하고서라도 세계 정치와 경제상의 기득권을 지켜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갈림길에 서 있었다." "과학과 기술은 파괴의 방향으로 변용될 수 있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2. 제 1차 세계대전과 유럽
1차 대전 발발
"독일과 기존의 패권 열강인 영국 및 프랑스 사이에 조성된 긴장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위 계승 후보자인 페르디난트 대공이 아내와 함께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대공 부처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오스트리아 제국에 반대하는 비밀 결사의 조직원인 세르비아인 청년이 쏜 총에 목숨을 잃었다."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세르비아의 후견 국가인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렸다." "오스트리아와 동맹 관계에 있던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고, 곧바로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2
"1차 대전의 발발 원인에 관해서는" "크게 네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 다른 국가를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민족주의 정서의 고조
- 식민지 쟁탈 경쟁이 불러오는 유럽 열강들 간의 긴장
- 전쟁에 대비하는 동시에 전쟁의 가능성을 부채질하는 격심한 군비 경쟁
- 조그만 분쟁만 일어나도 관련 당사자의 동맹국들이 자동으로 참전하도록 되어 있는 동맹 체제
"19세기 중반까지 국가의 통일과 건설에 치중해서 식민지 획득에 소홀했던 독일이 세기의 전환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정책을 표방하며 기존의 식민지 열강 대열에 끼어들려고 하자 유럽의 열강 사이에 긴장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각국 사이에 치열한 군비 확장 경쟁이 벌어졌다."
"각국 지도부는 전면전을 벌여야 할 부담에 매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대중은 열렬하게 환호하면서 자기 나라의 참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쟁이 단기간에 자기 나라의 승리로 끝나리라는 낙관론의 산물이었다."
1차 대전의 양상
"제 1차 세계대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량 살육전으로 바뀌었다."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먼저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둔 뒤에 주력 부대를 동부 전선에 투입해서 러시아군을 제압한다는 슐리펜 계획에 따라 중립국 벨기에를 순식간에 제압하고 프랑스 영토 안으로 진격해 파리에 다가갔다." "그러나 러시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군을 동원해 독일의 동쪽을 위협했다." "독일은 서부 전선의 병력을 일부 빼돌려서 러시아군을 맞이했다." "1914년 8월 말에 힌덴부르크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이 타넨베르크에서 러시아의 대군을 쳐부숴서 동부전선의 위협을 없애버렸다." "이 틈에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9월 초에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을 밀어냄으로써 독일의 속전속결 계획에 중대한 차질이 생겼다." "기동전이 지로한 참호전을 벌이는 끔찍한 장기전으로 변해갔다."
"기관총과 철조망으로 강화된 참호를 일렬횡대 대형으로 공격하는 상황에서 방자측이 절대 유리했으며 공자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적의 전선을 뚫지 못하고 극심한 피해만 보는 상황을 면할 수 없었다." "기병대식 돌격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의식은 19세기에나 어울리는 화석화된 교리였다." "자연히 교착 상태가 지속되었고, 참호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은 극한에 이르는 고통을 겪었다."
"참호전이 지속되자 각 교전국의 지배계끕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염전 사상이 들어서고 결국에는 자칫 사회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던 것이다." "교착상태를 타개하려고 독일군은 1916년 2월부터 6월까지 베르됭에서, 영국과 프랑스군은 7월부터 11월까지 솜에서 각각 엄청난 인력과 물량을 투입하는 대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각 공세는 방어 시설이 완비된 적진을 향해 무모한 돌격을 수행하다가 공자가 천문학적 인명 피해만 보고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결말이 났다."
"애초에 기동전으로 진행되리라고 예상되던 전투가 참호전으로 바뀌었고," "결정적인 돌파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소모전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물량전으로 이어졌다." "독일을 비롯한 교전국들은 소모전과 물량전을 감당하고자 나라의 모든 자원을 조직해서 전쟁 수행에 동원하는 총력전 체제를 구축했다." "산업에서 남성을 대체하는 노동력으로 여성이 대거 동원되어 군수 공장에 투입되었다." "근대에 들어서서 가정이라는 영역에 갇혀 지냈던 여성이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으로서 예전에는 진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각 분야에 진출하는 현상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촉진되었다."
"후방까지도 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고, 군수 물자의 생산에 동원되는 민간인도 살상 대상이 되었다." "적국 전쟁수행 기구의 기반을 구성하는 전쟁 수행 노력을 무너뜨릴 필요성이 생기면서 장거리포나 비행선과 항공기로 적국 후방을 공격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독일은 객관적 지수로만 보자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나중에는 미국까지 포함된 연합국의 힘을 당해낼 경제력은 지니지 못한 상태였다." "매우 열세였음에도 독일 주도의 중구 열강이 협상국과 대등한 전쟁을 수행하고, 더 나아가서 때로는 더 우월한 전투 능력을 발휘해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요인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 더 효율적인 참모 조직을 갖춘 독일 육군의 뛰어난 전투력
- 유럽의 한복판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에서 오는 내선의 이점
- 레닌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모델로 삼을 만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산업 경제의 체계적 조직화
"제 1차 세계대전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총예행연습의 성격을 띠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상화될 전술인 탱크를 이용한 적진 돌파, 항공기를 이용한 후방 폭격, u-보트를 이용한 선단 공격과 이에 대항한 호송선단의 형성, 보병과 포병의 협조를 극대화한 탄막공격 등이 제 1차 세계대전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후반기가 되면 정치도 전쟁 못지않게 소용돌이쳤다." "러시아 제국에서 1917년 초봄에 혁명이 일어나 제국이 무너졌다.""연합국은 전제정을 대신해 들어선 러시아 임시정부가 전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독려했다." "임시정부는 승리할 때까지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노선을 고수하다가 8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3
"연합군은 고전을 하면서도 적절한 대응으로 독일군에 반격을 가했다." "그 사이에," "미국이 연합국 편에 서서 참전하게 되었다." "전쟁에 지치지 않은 미국이 전쟁에 끼어들기 전에 어떻게든 승기를 잡고자 독일이 사력을 다해서 1918년 여름에 펼친 대공세가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전쟁에 지친 독일의 해군 병사들이 11월에 일으킨 항명 사태가 독일 전역에 혁명적 사태로 이어지면서 전쟁은 중구 열강의 패배로 끝이 났다."
전쟁 후
"독일 제국은" "내부의 혁명적 소요로 말미암아 패망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패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독일 우파와 패배한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던 상당수의 국민 사이에서는 '승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사회주의 세력의 내부 준동 때문에 패전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은 그 뒤 독일에서 나치즘이 탄생해서 발호하는 기름진 토양이 되었다."
"이 전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띤다."
- 제1차 세계대전은 근대 유럽의 군사 체계에서 일어난 5대 혁명적 변혁 가운데 하나
- 지배계급이 제국과 사회의 통합성을 위협하는 민족주의와 계급투쟁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택한 전쟁이 오히려 궁국적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오스만 제국 등 대제국의 해체를 몰고 옴
- 유럽의 번영과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던 유럽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어 19세기 후반기에 널리 퍼져 있던 인간 사회의 진보에 관한 낙관론이 사그라들었음
- 유럽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통해 근대를 주도하는 한편으로 그 근대성의 종합체이자 최종 산물인 현대적 군대를 동시에 배태, 그 결과 미증유의 피해를 자초
- 유럽이 전쟁으로 내상을 입는 동안 미국, 일본 등이 국제 열강으로서 국제 무대에 등장
"근대에 들어와 유럽이 행사해온 패권이 적잖이 회손되었다."
- 프로이센의 수상 폰 비스마르크가 주도하여 독일 제국을 수립하였다. 독일 연방 내에서 주도권 경쟁 중이던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관세동맹을 맺고 연합하여 덴마크-프로이센 전쟁을 통해 덴마크를 패배시켜 슐레스비히는 프로이센이, 홀슈타인은 오스트리아가 나누어 가졌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로 갈등이 깊어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했고 그 결과 프라하 조약을 거쳐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에서 배제되었다. 이후 빌헬름 1세가 독일 황제로 즉위하며 독일 제국을 선포하여 독일 제국이 수립되었다. [본문으로]
-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손을 잡고 보스니아-헤르치코비나를 병합했다. 세르비아인은 보스니아를 자국의 일부로 간주했고 독립적 발전을 바랐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슬라브 민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 1차 대전의 부담으로 농업 생산이 감소하고 기아가 늘어났다. 여기에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이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혁명을 주장하며 지지를 얻었고 2월과 10월 두 차례의 혁명을 통해 러시아를 전제군주제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전환했다. [본문으로]
'정리 리딩 > 세계화 시대의 서양 현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장 20세기 초 서양 세계 (1) | 2024.11.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