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기록

제4장 본문

필사/시학

제4장

be-Seen 2024. 9. 30. 23:29
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리고 이 두 개의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근거를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무릇 모방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어렸을 때부터 내재한 것이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도 가장 모방을 잘 하고, 그 지식도 모방에 의하여 획득하기 시작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모방된 것에 대하여 모든 인간이 희열을 느낀다는 것도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인간이 모방된 것에 대하여 희열을 느낀다는 것은 경험적 사실에 의하여 증명된다. 비록 그 자체로서는 우리가 보기 싫어하는 대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가장 정확하게 그려진 초상을 보고는 기뻐한다. 예컨대 가장 흉한 동물이나 시체의형태가 그렇다. 그런데 이것은 또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인한다. 즉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철학자에게 최대의 낙일 뿐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비록 그들이 그에 관여하는 정도가 미미하다 할지라도- 다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초상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 것은 봄으로써 배우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건 바로 그 사람이구나' 하는 등, 각 사물이 무엇인지를 추론하여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물을 전에 본 일이 없다면, 우리의 기쁨을 야기하는 것은 그 사물의 모방물로서의 초상이 아니라, 그 초상을 그린 수법이라든지 색채라든지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어떤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모방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이요, 또 조화와 율동-운율이 율동의 일종임은 명백하다-도 그러한데, 인간은 이러한 본성에서 출발하여, 이에 여러 가지 개량-그 대부분은 점진적이었다.- 을 가하여, 즉흥적인 것으로부터 시를 창조한 것이다. 
그런데 시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었다. 왜냐하면 비교적 엄숙한 시인들은 고귀한 행위와 고귀한 사람들의 행위를 모방한 데 반하여, 비교적 경박한 시인들은 비열한 자들의 행위를 모방하였는데, 전자가 찬가와 찬사를 썼다면 후자는 최초에는 풍자시를 썼다. 호메로스 이전의 시인들이 슨 풍자시들이 우리에게 전하여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나, 그런 시를 쓴 시인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호메로스 이후부터는 여러 예를 들 수 있으니, 예컨데 그의 <마르기테스>라든지 그 밖에 다른 시인들의 유사한 작품이 있다. 이들 풍자시에는 그에 적합한 것으로서 단장격의 운율을 사용하였다. 그것이 현재에도 '이암베이온'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이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이 운율로 사람들은 서로를 '이암비제인'(풍자, 조소)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고대 시인들 중의 일부는 영웅시 작가가 되고, 일부는 풍자시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엄숙한 것을 그리는 경우에 있어서 시인 중의 시인일 뿐 아니라,-왜냐하면 그는 일반적으로 뛰어난 시를 썼을 뿐 아니라, 그의 모방은 희곡적인 점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우스운 것(개인적인 풍자가 아니라)을 희곡화함으로써 희극의 대체의 윤곽을 보여 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마르기테스>의 희극에 대한 관계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비극에 대한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극과 희극이 출현하게 되자, 시인들은 각자의 소질에 따라 시의 두 경향 중의 하나에 향하게 되어, 어떤 시인들은 풍자시 대신에 희극 시인이 되고, 어떤 시인들은 서사시 대신에 비극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각각 후자가 전자보다 더 위대하고 가치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비극이 그 구성의 여러 요소에 있어서 이미 충분히 발달한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를 고찰하고, 그것을 그 자체로서 혹은 상연과 연관시켜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하간 비극은 즉흥적인 것에서 기원하고, 희극도 그러하였다. 비극은 디티람보스 노래의 지휘자로부터 시작하였고, 희극은 아직도 많은 도시에서 관습으로 잔류하고 있는 남근 찬가의 지휘자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비극은 그 새로운 요소가 발견되고 발달됨으로써 점진적으로 진보하였다. 그리고 많은 변화를 겪은 뒤에 비극은 그 본연의 형식을 획득하게 되고, 그 발전은 정지되었다. 
(1) 배우의 수를 한 사람으로부터 두 사람으로 한 것은 아이스킬로스였는데, 그는 또 가무단의 활동 범위를 줄이고, 대화를 극의 지도적 부분으로 하였다. 
(2) 소포클레스는 배우의 수를 세 명으로 하고, 배경을 안출하였다. 
(3) 비극은 또 그 길이가 길어지게 되었다. 종래의 사티로스극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짧은 '스토리'와 우스운 조사를 버리고 위엄성을 구비하게 되었는데, 이는 후기의 일이었다. 그리고 운율도 장단격으로부터 단장격으로 변하였다. 최초 장단격 4절 운ㄴ율이 사용된 것은 당시의 비극이 사티로스극이었고, 현재보다 무용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도입되자,  자연 스스로가 적당한 운율을 발견하였다. 왜냐하면 단장격은 여러 운율 중 가장 담화에 적당한 운율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는 우리가 상화 대화에 있어서 대개 단장격으로 말을 하고, 6절 운율로 말을 하는 일은 드문데 보통 어조를 이탈하였을 때에 한해서만 이 운율로 말을 한다는 사실을 들 수가 있다. 
(4) 또 하나의 변화는 '삽화'의 수가 많아진 것이다. 기타 희곡의 장식적 부분 및 그 내력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을 한 것으로 하여 두자. 그것을 일일이 상론함은 큰 일일 것이니까. 

'필사 > 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장 : 비극(플롯 성격 사상 등)  (6) 2024.10.09
제5장  (1) 2024.10.02
제3장  (0) 2024.07.29
제2장  (1) 2024.07.19
제1장  (0) 2024.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