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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의 사유와 근거의 사유 본문
다름의 사유와 근거의 사유
다름의 사유는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아이폰'과 '갤럭시'는 다르다." 따위의 다름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근거'와 '근거 지어진 것'의 근본적 다름이 다름의 사유이다. 그렇기에 다름의 사유는 항상 근거의 사유를 수반한다.
존재자의 근거로서 존재가 있다면 존재와 존재자는 달라야 한다. 경험적 현상의 근거를 묻는다면 그 근거는 경험적 현상 외부에 있어야 한다.
서양 형이상학은 위와 같은 근거에 대한 '존재물음'을 물어 왔다. 존재자가 아닌 즉 자신의 타자에 대해서, 존재자로서의 우리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 물어 왔다. 존재자의 근거를 묻는 존재물음은 이처럼 다름의 사유와 관련이 있다.
존재망각
서양 존재론은 지속적으로 존재자의 근거를 물어왔다. 허나 하이데거는 서양의 존재론 역사 자체가 존재 망각의 역사라고 말했다.
존재망각은 존재 물음이 존재자에 관한 물음으로 제기되어 왔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이다. 다름의 사유에 따라 존재와 존재자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그러나 서양 존재론 역사 전체에서 존재가 아닌 존재'자'에 대해 물어왔다. 존재와 존재자를 혼동했고, 존재자의 의미를 물으며 그것이 마치 존재의 의미인 듯이 착각해 왔다.
"형이상학은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만을 물어 왔기 때문에 이 학문은 존재자에 머물러왔고 존재로서의 존재에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형이상학은 줄곧 그리고 단지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만을 표상한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형이상학은 존재 자체를 사유하지 않는다."
"형이상학은 단지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표상함을 통해서만 존재를 사유하기 때문에, 존재의 진리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 전체에 있어서의 존재자를 생각하면서 존재를 말한다. 존재를 말하면서도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를 생각한다."
"존재자와 존재를 줄기차게 혼동하고 있다. 이 혼동은 물론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 마틴 하이데거,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사건 : 사건 또는 생기로 말해진다. 생기는 '일어남'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어떤 일이 생기했는데, 그 일이 특정한 주체, 주관의 의지와 활동에 환원되지 않을 때 생기가 발생했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어떠한 발생, 일어남을 말하는 거 같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이것은 그의 의지와 활동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 숙명이다. 생기가 발생한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대화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화가 흘러갈 때를 목격하곤 한다. 이것이 생기이다.
(하이데거가 이 혼동을 생기로 사유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 혼동이 서양 철학자들의 무지나 부족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운명으로 자신에 와서야 답해질 수 있다는, 혹은 인간은 영원히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처럼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에서 서양 형이상학은 존재와 존재자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존재에 대해 물어왔고 이에 답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제대로 물은 적도 없고 그래서 답을 할 수도 없었다.
존재를 묻는다고 착각하며 '존재자로서의 존재자', '전체에 있어서의 존재자'를 물어왔다.
'존재자로서의 존재자', '전체에 있어서의 존재자'가 무엇인가. 최상의, 가장 보편의 존재자를 말한다. 존재는 존재자와 질적인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존재자의 근거를 물어 물어 올라가서 가장 상위에 위치한, 그래서 더 이상 근거를 물을 수 없는 존재자를 존재로 생각해 왔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신이라는 존재자, 정신이라는 존재자, 그리고 물체라는 존재자로 답한다. 신이라는 무한 실체가 있다. 또 두 개의 유한실체로서 정신과 물체가 있다. 정신은 '사유하는 것(res cogitans)'을 존재로 하고 물체는 '연장을 갖는 것(res extensa)'를 존재로 한다. 이는 더 이상 근거를 물을 수 없는 최상의 존재자이다. 허나 존재자의 근거를 존재자로 답했다. 즉 존재와 존재자의 혼동이 생겨났다.
존재론적 차이, 구분 다름
존재와 존재자 간에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이 구분과 차이를 망각했고, 그것이 곧 존재 망각의 의미이다.
허나, 이 구분과 차이라는 문제는 하이데거에 와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Chorismos.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와 현상 간의 틈, 간격이다. 존재는 존재자와 다르다는 것을 플라톤은 현상과 이데아가 같을 수 없다는 차이의 개념을 이미 제시했다. 칸트도 마찬가지다. 현상의 배후에는 그 자체 현상이 아닌 무언가(물자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다. 존재는 존재자의 근거이다. 존재가 존재자의 근거라는 그 사실에 이미 존재와 존재자의 근원적 다름이 함축되어 있다. 하이데거는 서양 존재론 역사 전체가 이 존재와 존재자의 구분을 망각했고, 그 망각이 존재망각이라 일컫는다.
서양 형이상학의 실체 개념과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의 동형성
전통적인 철학사에서 실체 개념과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은 동형성을 지닌다.
"모든 ~하는 것을 ~하게 해 주면서, 스스로는 ~가 아닌 것"이라는 형식적 개념을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 '운동'을 넣어 부동의 동자를 "모든 것을 운동하게 하면서 스스로는 운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칸트는 '제약'을 넣어 무제약자를 "모든 것을 제약하면서 스스로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즉, 다름(스스로는 ~가 아닌 것)과 근거(모든~를 ~하게 하는)의 사유가 반영되었다.
하이데거도 마찬가지이다. '존재자'를 넣어 "모든 존재자가 존재자로 존재하게 해 주면서, 스스로는 존재자가 아닌 것'이 존재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개념을 구분하고 실체 형이상학자들을 존재망각에 빠진 자들로 비판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이데거는 질적규정, 내용적 제한을 하지 않지만, 전통적 철학사는 구체적인 무엇으로 질적 규정을 한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우리는 하이데거의 존재 규정을 통해 존재에 관해 새로 알게된 것은 없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존재를 무엇이라 규정한 바도 없다. 실질적으로 내용적, 적극적 규정을 하지 않았다. 다만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고, 존재자의 근거라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반면 전통적 존재론에서는 규정된 무엇으로 실체를 규정한다. 이를테면 "신은 창조되지 않은 창조자이다." 여기서 '신'은 '창조되지 않은 창조자'라는 서술어의 질적 내용을 갖는 존재자이다. 이것은 '신' 즉, 존재 혹은 실체를 유개념과 종차에 따른 분류를 통해 정의한 것으로 구체적 내용을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유개념과 종차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자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유와 종을 가지고 존재자를 규정하던, 즉 개념을 일반화하고 구체화하면 위 아래로 움직이던 개념의 피라미드 안의 어떤 존재자가 아니라, 이 피라미드 자체를 넘어서 있는 것(다름의 사유)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존재 규정
하이데거는 '존재'에 질적 규정을 하지 않는다.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은 형식적 규정이다. 내용적, 질적 규정을 하면 존재는 하나의 구체적인 존재자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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