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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하이데거??

be-Seen 2024. 3. 18. 17:15

하이데거는 존재 물음이라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갖고 학문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 존재의 의미에 이르는 통로를 찾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하이데거는 두 가지 대답을 할 것이다.

- 전기의 하이데거는 존재자를 통해 존재의 의미에 도달한다는 답을 할 것이고

- 후기의 하이데거는 존재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존재의 의미에 도달한다는 답을 할 것이다. 

(하이데거 자신은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하이데거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전기 하이데거

이제부터 말하는 하이데거는 전기 하이데거이다.

존재와 시간을 집필하던 하이데거. 그의 철학은 해석학적 존재론이다. 이를 위해 해석학과 존재론에 대한 이해가 우선 필요하다. 

 

존재론ontolog

존재론은 일반 형이상학으로 그 주제는 '존재'이며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학문이다. 

여기서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는 존재자가 아닌 존재자가 존재하게끔 해주는 존재의 근거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이를 찾아가는 학문이 존재론이다. 

 

해석학Hermeneutics

해석학은 실재로 존재하고 있는 것들, 즉 존재자를 다루는 학문이며 그 중 인간 존재자를 다룬다. 해석은 이해를 근거로 한다. 이해가 없다면 해석도 없다. 헤르메스Hermes는 신과 인간의 매개이다. 이를 어두로 하는 해석학 자체가 매개하는 학문인 것이다. 해석학을 매개로 하여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해석학은 기초존재론으로 존재론의 토대가 된다. 

 

전통적으로 해석학은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학문이었다. 하이데거에 와서 해석학의 대상(이해의 대상)은 텍스트가 아닌 인간 자신, 인간의 실존이 되었다. 해석학이 인간 실존의 분석론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의 실존 방식이 이해이다. 현존재는 항상 존재를 근거로 가진다. 이 존재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나 애매하게나마 존재의 의미를 이해한다. 즉 인간은 이해라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존재자이고 현존재의 실존 방식에 대한 분석은 존재 이해에 의거해서 진행되기에 존재론적 탐구를 위한 기초, 토대,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의미에서 인간의 실존 이해를 분석하는 해석학은 기초 존재론이다. 

 

하이데거에 있어 인간 실존의 이해 방식은 '기획투사'이다. 현존재는 그가 존재하는 한 항상 이미 자신을 가능에서부터 이해하고 아직도 항상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현실의 실존에 있는 현존재를 지금 '나'가 아닌 가능으로 던진다. 그러면 현실의 실존이 아닌 가능성을 가진 탈존으로 가고 여기서 현실의 실존을 바라보고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실존의 '나'와 더불어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이것이 하이데거의 현존재 이해 방법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의 의미에 직접 도달할 수는 없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존재자의 실존 방식을 해석학으로 이해할 수만 있다. 따라서 존재자 실존 방식의 탐구를 통해 존재론의 실마리를 발견해야만 했다. 존재자는 존재를 애매하게나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해 내용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에 대한 학문으로서 해석학은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을 대답하려는 시도인 존재론을 위한 통로, 매개 역할을 한다. 

 


후기 하이데거

지금부터 하이데거는 후기의 하이데거이다.

하이데거는 이제 존재론에 대한 해석학(현존재분석론)의 역할에 회의를 가진다. 더 이상 해석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철학이 전기에 해석학적 존재론이었던 것에서 바뀌었다. 

그에게 해석학은 존재자에 대한 이해를 매개로 하여 존재를 탐구하는 것에서 존재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기술이 되었다. 해석학은 존재론 자체가 된다. 그러므로 해석학을 통하여 존재자를 분석할 필요 없이 존재론을 전개한다. 존재 자체를 통해 존재 의미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다.

이 후기의 철학이 존재사유이다.

 

'존재사유'는 존재'가' 사유한다는 말이다. 존재자가 존재를 사유하는 것이 아닌 존재 자신이 스스로 사유하고 사유의 내용을 존재자에게 내어준다. 유한한 존재자는 이 사유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존재가 알려주는 사유 내용을 수동적으로 청취한다. 그러므로 해석학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존재자는 존재의 말 걸어옴에 화답하여 대응하는 수동적 청취자에 불과하다. 


전회 Kehre

하이데거의 이같은 태도 변경을 전회라 부른다. 이 전회는 단순한 입장의 변화가 아닌 존재자로부터 그 근거인 존재 자체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물론 전기의 하이데거 역시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존재를 알기 위해 존재자를 탐구했던 전기의 하이데거와 달리 후기 하이데거는 그 근거 자체를 알기 위해 존재자를 통하지 않는다. 

 

 

 

다시, 존재와 시간

존재와 시간은 두 극단적인 가능성의 중간에 서 있다. 두 극단적인 가능성은 다음과 같다. 

- 수다성이 아닌 통일성만을 다루는 철학 : 경험적 인식 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는 독단에 빠지는 독단주의 철학. 

- 통일성이 아닌 수다성만을 다루는 철학 : 극단적 포스트모던한 철학은 존재자 너머 알 수 없는 무엇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철학. 근거를 삭제하고 존재자에 대한 과학만을 할 수 밖에 없는 회의주의로 빠진다. 

 

 «존재와 시간»은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는 의미에서 회의주의 과학이 아니다. 즉 형이상학적이다. 동시에 독단적 사변에 의하지 않고 존재자의 실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해석학적(인간학적)이다. 

이 기획의 근거에는 존재와 존재자의 상호성이라는 통찰이 자리한다. 존재자를 통해 존재를 이해하기를 시도하고 존재자를 존재와의 관계 안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그에게 철학은 존재와 존재자를 함께 사유하는 어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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