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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물음

be-Seen 2024. 4. 20. 20:36

하이데거는 지속적으로 존재자가 아닌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 물음은 존재에 대한 평균적이고 애매한 이해를 가진 존재자만이 던질 수 있는 물음이다. 

현존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하는', '이다' 등의 말을 오류 없이 사용할 줄 안다는 점에서 이해를 전혀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존재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는 없고 않아서도 안된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존재론 역사는 존재에 대한 세 가지 선입견으로 인해 존재 망각을 해 왔다고 말한다. 

1. 존재는 가장 보편적인 개념이다.

플라톤은 개념의 보편화로 존재를 가장 보편적인 존재'자'로 설정한다.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에서 출발해서 사물과 사물의 공통점을 묶어 한층 보편적인 개념에 도달하고 그 개념과 다른 개념의 공통점을 묶어 더 보편적인 개념으로 나아가는 보편화, 일반화, 개념화의 과정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존재자를 존재로 설정한다. 

문제는 이 개념의 피라미드 첨단에 오는 것은 존재가 아닌 보편적인 존재자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존재와 존재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양의 존재론 역사는 존재를 존재자로 여겨왔기 때문에 존재 망각의 역사이다. 

 

2. 존재는 정의 불가능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정의항과 피정의항을 통해 정의를 내린다. 주어는 피정의항으로, 그 뒤의 술어는 정의항으로 말해진다.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존재를 피정의항으로 두어야 한다. 즉, "존재는 -이다" 식의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다'는 존재이며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정의되어야 할 존재를 사용해야만 한다. 또, 존재는 유개념을 가지지 않기에 유개념과 종차로 분류하는 '무엇'질문에 답해질 수 없다. 

 

그러나 유개념과 종차의 개념으로 정의를 내리는 "S is P" 형식의 문장은 존재자를 서술하는 언어이다.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다. 존재는 위의 형식논리학적 문제로 인해 정의 불가능한 개념이 아니라, 애초에 "S is P"의 존재자를 서술하는 언어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존재를 정의할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1번에서 살펴본 것처럼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기에 존재자를 정의 내리는 유개념과 종차의 언어로는 존재를 정의할 수 없다.   

 

"존재는 정의될 수 없다"는 두 번째 선입견은 "이다"를 가지고 "이다"를 정의한다는 형식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에 두 가지 가르침이 있다. 

첫째, 존재는 실체가 아니다. : '존재', '이다', '있다'는 문자의 주어자리에 올 수 없다. 실체는 활동의 주체, 근거로 문장의 주어 자리에 오는 것들로 말하자면 술어들의 주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라는 문장의 주어인 '인간'은 술어 '이성적인 동물'의 주인이다. 또 실체를 나타내는 그리스어의 원래 말은 ousia로 땅, 대지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그 자체로는 변화가 없지만 그 위에 변하는 모든 것들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S is P"라는 문장 형식은 실체를 문장의 주어 자리에 놓고 여러 술어들로 실체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실체 형이상학의 언어인데, 하이데거는 존재는 문장의 주어 자리에 놓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즉, 존재는 실체라는 존재자가 아니다.

 

둘째, 존재를 표현할 언어가 없다. 존재는 무엇인가를 묻는 순간 존재는 실체가 아니기에 주어 자리에 올 수 없고, 물음 자체가 오류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인간은 존재에 대해서 말할 방법이 없어진다. 무엇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주어 자리에 놓고 언어를 통해 사유한다. 따라서 실체 형이상학을 벗어날 수 없고 하이데거는 이를 언어의 궁핍이라고 했다. 존재를 실체라는 존재자로 사유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언어의 한계. 정확히는 존재 사유를 표현할 언어가 없다. 

 

3. 존재는 자명한 개념이다.

우리는 '존재', '이다'라는 말을 아무 문제 없이 잘 사용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존재 물음을 던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즉, 존재 물음 제기의 필연성을 은폐시킨다. 존재는 "존재자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것이고 존재론적으로는 가장 멀다". 

존재자적이란 존재자에 대한 기술을 뜻한다. 이것은 학술적 해명은 포함하지 않는다. '존재'를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존재자적으로 가까움을 뜻한다. 반면 존재론적이란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해석, 즉 학술적 이론적 해석을 말한다. 우리는 '존재'를 문제 없이 사용하지만 존재 의미에 대해서는 무엇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는 가장 멂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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