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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예술과 모방 본문
플라톤의 핵심 용어들은 그의 변증론의 동향에 따라서 의미가 변화하는데, 대개 그 변화를 추적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로 인하여 그의 사상적 일관성과 통일성에 관하여 확신하기가 지극히 어렵게 된다. 한 대화편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한 패거리의 모든 구성원은 어떤 속성을 지닌다고 하면서, 나중에 가서 다른 대화편에서는 단지 그들 중 몇몇만이 그러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플라톤이 자기 모순에 빠졌거나, 마음이 바뀌었거나, 또는 말장난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한 쌍의 테제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 문제는 그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과 관련해서 제기된다. 플라톤의 미학을 이해할 때의 또 다른 중대한 위험은 이 용어들이 너무도 쉽사리 영어로 번역되고 있다는 점이다.
: 플라톤 용어는 같은 말이나 다른 뜻일 때가 있다.
그러한 용어 가운데 가장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보통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art'(techne)로 번역되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craft'에 더 가깝다. Techne는 비범하고 특별한 능력을 요하는 일을 수행하는 기술skill이다. 그것은 어떤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 <소피스트>에서 플라톤은 낚시술의 이분법을 통하여 정교한 정의를 예시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그는 기술 일반을 '획득적인' 것(돈벌이와 같은 것)과 '생산적인' 것 즉 창조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후자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생산적 기술은 광범위한 기능, 예컨대 목수일, 플룻 연주, '그림, 직조, 자수, 건축, 가구제작' 등을 포함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모든 기술을 세분할 여러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것 같운데에는 인간의 것과 신적인 것으로 나누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오늘날의 미학도에게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는 '예술fine arts'과 실용적 기술 간의 구별을 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중대한 귀결은 전자, 즉 예술의 모든 것을 망라할 수 있는 최초의 이론이었던 것이다.
: 플라톤에게 있어서 예술과 기술의 구분은 크게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techne였고 그것을 art라 부른다. 그러나 플라톤은 어쩌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예술의 최초 이론가였다.
그 자신의 용어가 항상 결정적 길잡이가 되지는 못한다. 예컨대 '음악'은 음악을 의미할 수 있지만, 예술 일반 또는 일반 문화와 같은 것을 의미하기조차 한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비록 '음악과 운율의 일'만이 통상 시라 불리고 있지만, "무에서 유로 옮아가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의 전체 원인은 작곡 또는 시이다." 그러나 그는 시각 예술(회화, 조각, 건축)과 여러가지 형태의 문학, 혼합된 음악예술-무용, 노래 그리고 무용과 노래를 결합한 '합창예술'-등에 해당하는, 분명히 어떤 특별한 범주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는 오늘날 '예술'이라는 말을 통상 이 모두에 해당하는 것으로 쓰고 있다.
: 플라톤은 없는 것을 만드는 행위 자체를 '음악'이라 불렀다. 예술이라 부를 만한 모든 것들을 그렇게 불렀다.
플라톤은 은연중에 협의의 기예와 그밖의 기술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전자는 공화국의 젊은 수호자들이 서로 나누어야 할 유일한 기술이며, 그것을 지닌 젊은이들은 특권을 지닌 자들이다. 이 차이는 플라톤의 어법에서 반향되고 있다. 법률과 공화국에서 플라톤은 가장 고상하고 모든 것을 망라하는 기술은 통치술, 즉 정치의 '기술' 내지는 왕의 기술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소중한 사회질서를 구성하고 또 그에 입각한 법령을 오래 지속되면서 번영케 하는 방식으로 제정하고자 하는 통치자의 임무를 가장 생생히 그려내고자 할 때에, 플라톤은 항상 통치술을 여러 기예들 가운데 하나-비극 쓰는 일, 조각에 채색하는 일, 그림-와 비교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바로 이 기예는 곤란한 철학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비록 공화국의 건축가들이 이따금 그들의 시민에게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제공하려고 꾀하기는 했겠지만 신발을 만든다거나 살 집을 짓는 일에 관한 한 그 정당성을 왈가왈부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연극과 음악, 건물의 장식-이러한 것들은 플라톤을 여러모로 당황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왜 존재해야만 하는지가 전혀 명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젊은 수호자들은 협의의 기예를 서로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특권이다. 통치하는 기술 역시 '기술'이다. 기술과 예술.
: 여러 기술들. 플라톤은 시민들의 삶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예술'이라 불릴 만한 것들(장식, 연극, 음악)의 존재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신발을 만들고, 살 집을 짓는 당장 필요한 '기술'이라 불릴만한 것들의 정당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모두 '기술'이라 부르지만 그에게도 그 안에서 즉, 협의의 기예와 그밖의 기술 간 차이가 있었다.
생산적 기술 모두에 관해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에 의해 새로운 어떤것이 생겨나고, 그러기 위해서 매체가 되는 재료는 일정한 방식으로 조립되거나 변형되어 처리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그와 관계된 하나의 기술, 또는 일련의 기술들이 있어야만 하고 또한 일종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예컨대 음악가는 "소리들이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식별하는 기술"을 지닌 자이다. 지적인 생산작업 또한 일정한 목표를 지니고서 하나의 계획을 따르는데, 이 계획이 곧 그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내내 지침이 된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모든 생산은 '모방'이다.
: 재료(매체) -> 변형 조립 처리과정 = (새로운 어떤 것).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식'에 따라 무언가를 새로운 무언가를 생산한다. 이를테면, 책상의 제작 과정에서, '책상'의 개념, 책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식에 기반하여 재료들을 기술을 통해 만들어 낸다. 기존 책상 개념을 '모방'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플라톤 미학의 두번째 핵심 용어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언제나 해석자들을 매우 곤란하게 만들며, 플라톤 자신도 명료하게 해 보려고 이따금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스러운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예술은 그밖의 기술들과는 다른 그런 의미에서 모방적이라는 사실이 플라톤에게는 중요했다. 중요하지만 포착하기 어려운 이 개념(또는 개념체)에 관하여 고찰하려면 플라톤의 가장 포괄적인 용례를 고찰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플라톤의 전체 철학의 핵심이기 대문이다. '미메시스mimesis'라는 용어 외에도 그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 또는 그와 동격으로 사용되기까지 하는 세 가지 용어가 있다. 즉 '메텍시스methexis'(관여), '호모이오시스homoiosis'(유사성), '파라플레시아paraplesia'(같음)이 그것이다. 이 용어들에 의해 표시되는 관계-상eidolon과 그 상의 원형archetype의 관계-는 도처에서 보여진다. 대상은 그것의 그림에 의해 모방되고 사물의 본질은 이름에 의해 모방된다. 또한 실재는 사유에 의해, 영원성은 시간에 의해 모방된다. 음악가는 천상의 조화를 모방하고, 선량한 사람은 덕을 모방하며, 현명한 입법자는 나라 세움에 있어 선의 형상을 모방한다. <소피스트>에서 테아이테투스는 이 용어 즉 모방이라는 말은 "지극히 다양한 것을 포괄한다"고 사려깊게 말하고 있다.
: 미메시스, 메텍시스, 호모이오시스, 파라플레시아.
상 eidolon | 원형 archetype |
그림 | 대상 |
이름 | 사물의 본질 |
음악 | 천상의 조화 |
사유 | 실재 |
시간 | 영원성 |
나라 세움의 입법 | 선의 형상 |
이러한 다양성을 고려해 볼 때, '미메시스'와 그에 관련된 용어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데는 어쩔 수 없이 오해가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와 동등한 무제한적 의미를 지닌 영어 낱말이 없기 때문이다. 'representation'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것이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상원의원은 자신의 선거구민을 대표한다. 그림은 대상을 재현한다. 상표는 제품을 표시한다. 아마도 '미메시스'는 거기에다 복사한다, 또는 본뜬다는 의미가 좀더 강화된 것이지만 이것은 'representation'에도 나타난다. 그 상원의원이 진정 그들의 대표자라면 그를 공직으로 보낸 그들의 의사를 투표에서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플라톤의 '미메시스'를 통상적인 용어 '모방'으로 취하였으나, 그것이 그 복합적 의미에서 'representation'에 보다 가깝게 사용되어진 것임을 밝힘으로써 그에 관한 오해를 막고자 한다. 공화국의 마지막 권에는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거기에서 플라톤은 침대의 형상을 "사물의 본성에 존재하는, 그리고 내 생각으로 우리가 신의 산물이라고 기술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형상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의 나머지 부분과 거의 양립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어떻게 형상이 영원할 수 있을까? 또 형상을 제작함에 있어 신이 모델로 취할 초형상이나 다른 유형의 형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모방일 수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 침대의 형상. 신의 형상을 '만들었다'라고 한다면, 모델이 필요하고 그것을 모방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신의 형상은 ,, 무얼 모방한 것인가?
이러한 의미에서 한 대상의 형상은 그 대상의 본질적 성질이다. 그것은 대상의 기능이며 또한 그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그 대상의 이상적 조건이다. 예컨대 부엌칼을 생각해 보자. 모든 칼 또는 동일한 종류의 칼이 공유하는 기능은, 플라톤에 의하면, 물리적인 칼 자체의 존재나 비존재 또는 변화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론적 지위(이상적 원형으로서)를 갖는다. 칼의 이상적인 형상은 영원불변의 완전한 것으로서, 물리적인 칼에 완전히 구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칼의 제작자가 그 기능을 완수할 수 있는 칼을 만드는 한 그는 그 기능, 따라서 칼의 형상에 대한 모종의 개념적 파악에 의해 인도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의 actual 칼은 그것의 원형(즉 '실재'의 real 칼)을 모방한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칼을 스케치하는 화가는 그 물리적 대상을 모방한다. 다시 말해서 물리적 칼은 이상적 칼의 상eidolon이며, 그림은 물리적 칼의 상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
: 칼이 있다. 모든 칼이 공유하는 기능. 보편. 어떤 칼이든 '칼'의 실재, 본질적 성질이 있다.
실재의 칼 - 현실의 칼 - 그림 칼 . 모방과 모방의 관계
소피스트를 공격하는 일관된 시도 과정에서 플라톤은 생산적 기술 일반의 다양한 산물들을 세분하고 있다. 첫번째 세분에서 '모방'의 보다 좁은 의미가 도입되고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예술론에 비교적 근접하는 것이다. 생산에는 (1) 실제적 대상의 생산-신에 의한 식물과 제원소들, 인간에 의한 집과 칼 등의 생산-과 (2) '상들' eidola의 생산-신에 의한 반영과 몽상, 인간에 의한 그림-이 있다. 상을 제작하는 기술은 엄격히 '모방적 기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집의 사진은 모방일지라도 그 집은 모방이 아니다. "또 우리 인간의 기술은 어떠한가? 집을 짓는 데에 있어 인간의 기술이 현실의 집을 생산한다고 한다면 그림에 있어서는 다른 종류의, 말하자면 깨어 있는 눈에 비친 인위적 환영 a manmade dream or waking eyes의 집을 제작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부터는 '모방'을 모두가 아닌 단지 몇몇 생산만이 모방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하도록 하자.
: 기술의 세분 - 모방의 좁은 의미 : 실제적 대상의 생산. 즉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생산하는 차원이다. 인간이 집을 만들고, 칼을 만든다. 신이 식물과 원소를 생산했다. 이건 좁은 의미의 모방이고, '모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두번째는 '상들'의 생산. 인간이 눈에 보이는 것을 모방했다. 즉 모방의 '모방'. 그림자의 그림자이다. 집 그림은 실제 집이 아니고 집의 인간의 눈에 비친 인위적환영일 뿐이다. 이걸 '모방'이라고 부른다.
상 또는 모방 개념에 본질적인 것은 그것이 어떤 점에서 그 원형original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상이 완전하다면-그 대상의 '일체의 실재를 모든 점에서 표현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상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사물의 다른 예일 뿐이다. 어떤 제도공이 다른 제도공이 만든 칼을 본떠써 만든다면, 그가 제가하는 것은 어떤 칼의 상이 아니라 또 다른 칼이다. 다소 간접적이긴 하지만 진정 그는 칼의 형상knife-Form 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다. 그러나 칼의 그림에는 현실의 칼이 지닌 무게와 예리함, 경도 등이 결여되어 있어서, 그것으로는 자를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결핍된 대상object manque이다. 그것은 참된 동시에 참되지 못한 것이며 존재와 비존재 둘다를 지닌 것이다. 그것은 중요한 특성을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원형에 비해 열등한 존재 서열에 속한다. 이러한 생각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꿰뚫고 있다. 현실의 칼은 잇아적인 칼에 비해 덜 실재적이며, 시간은 영원성에 비해 덜 실재적이고, 역사적인 도시국가의 정부는 이상적인 정의보다 덜 실재적이다.
: 여기서 '상 또는 모방'개념은 그림 등을 말한다. 실제를 인간의 눈에 환영으로 비추는 것. 그것들은 원형, 이데아, 본질을 결여한다.
반면, 한 제품을 참고하여 제작한 다른 제품은 '같은 종류의 사물의 다른 예'이다. 반면 그림은 모방이다. 원형을 결여하기 때문이란다. 칼의 원형은 예리함, 무게, 경도 등.
원형 | 상 또는 모방 |
칼, 또는 다른 종류의 칼. | 칼의 그림. |
존재 | 존재와 비존재 동시에. |
실재적 | 덜 실재적 |
이제 '모방적 기술'은 두 가지의 것을 산출해낸다.
(1) 모방자는 모델의 현실적 특성, 즉 그것의 참된 크기와 비례, 색채 등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재생한다. 이 경우 그는 진정한 유사성eikon을 생산한다.
(2) 모방자는 어떤 관점에서 봤을 때 사물이 '보이는' 방식을 본뜬다. 그 경우 그는 외형적 유사성 또는 닮은꼴 phantasma을 생산한다. 사물이 현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인다면 이 양자는 일치하겠지만,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은 많은 경우 그렇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원의 기둥들이 실제로는 같은 방식으로 서 있지만 동일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동일하게 보이려면 윗부분이 좀 더 넓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의도적인 왜곡이 보통 닮은꼴을 만드는 과정에 스며들어가기 마련이다.
: 그러니까 모방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닮게 한다. 근데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시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여하튼 지금가지 제시된 일련의 사상의 결론은 예술 일반에 대한 진리성의 부정이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의하면 음영시인인 이온은 호머를 연주할 수는 있으나 다른 시인들의 시는 연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기술 또는 지식' 없이 연주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어떤 일반적 원리나 방법을 갖고 있다면 헤시오드의 것도 그만큼 잘 연주할 수 있으련만, 그의 연주는 매우 효과적으로 낭독하고 감정을 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상기된 상태에 놓여 있어서 거기에는 그가 노래하고 있는 사물들에 대한 참지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미메시스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진지하게 수행되지 않는 일종의 유희 형식"이다.
: 플라톤의 시인, 예술 비판이다. 모방의 모방으로 지식이 없고 좋아 보이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실재를 파악한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오히려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음악과 회화, 시 등의 예술을 보다 큰 틀 속에 묶어놓고 이들을 그 자체의 목표와 방법을 지닌 특별한 종류의 기술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기술이기는커녕 사이비 기술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말은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화가는 단순히 하나의 기술을 실행하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실재의 그것이 아닌 것처럼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기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예술의 인식적 측면에 관한 한 플라톤의 고발은 신랄하다. 소카르테스가 <공화국>에서 말한 바대로, 예술은 현실성과는 한 단계, 실재 즉 현실의 배후에 놓여 있는 초월적 형상과는 두 단계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분할선이 묘사하고 있는 플라톤의 인식 네 단계설에 따르면, 예술은 최하위eikasia에 속한다.
: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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